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일랜드 마피아 (문단 편집) ==== 시카고 ==== [[금주법/미국|금주법]] 시기, 정말 너무나 유명한, 미국 갱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알 카포네|앨 커폰]]의 시카고 아웃핏과 아일랜드 갱단[* 아일랜드계가 주류였지만 많은 폴란드계와 소수의 독일계, 유대계, 이탈리아계도 조직원으로 있었다.]인 노스사이드 갱의 전쟁이 특히 유명하다. 이때의 장렬한 항쟁은 [[시카고]]가 갱스터 도시로서 세계에 각인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광란의 20년대]] 시기 막 대중화되기 시작한 [[라디오]] 방송들을 비롯한 기존 신문 및 대중매체들은 당시 사건사고들을 일종의 흥미거리로 취급[* [[알 카포네|앨 커폰]]이나 [[공공의 적]] 같은 인물들이 마치 로빈후드처럼 미화되거나 인기를 얻기도 했다.]하면서 자세히 다루었는데, 이로써 당시 상황들이 대중들한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이후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소설 등으로 다루어졌으며 이때의 이야기들은 [[서부극]]과 함께 미국 대중매체의 중요한 소재인 마피아물의 수많은 전형을 낳았다. 원래 시카고의 아일랜드 갱단은 마이클 카시우스 맥도날드의 범죄 제국이 있었고 금주법 시기 다양한 아일랜드 갱단들이 전국시대 군웅들처럼 서로 사업을 하면서 각자도생하고 있었다. 꼭 아일랜드 계열끼리 뭉친건 아니고 아일랜드 갱단끼리 서로 싸우기도 했고 아일랜드 갱단과 이탈리아계가 서로 손을 잡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낸건 겉으로는 꽃가게를 운영하면서 뒤로는 거대한 밀주사업을 하던 딘 오배니언의 노스 사이드 갱이었다. 한편 시카고 남부[* 그래서 사우스 사이드 갱으로 불렸다.]의 [[빈첸조 콜로시모]]의 이탈리아 마피아는 도박과 성매매 산업으로 번창하고 있었다. 그 시기 뉴욕에서 온 [[자니 토리오]]는 밀주 산업에 뛰어들자고 했는데, 이를 거절한 콜로시모의 구식 마인드를 싫어해 프랭키 예일을 사주해 보스를 암살하고 그의 조직을 인수한다. 이윽고 밀주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경쟁자를 싫어했던 아일랜드계의 노스 사이드 갱과 이내 사이가 안좋게 되었다. 또 시카고에는 시칠리아에서 온 제나 6형제들의 밀주 조직들도 있었는데 이들도 노스 사이드 갱과 이내 사이가 안좋아졌다. 처음에 오배니언과 토리오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려고 했다. 서로 사업을 분할하고 중재를 통해 이익을 나눌려고 했지만 갈수록 겹치는 부분에 있어 충돌하게 되었고 특히 제나 형제와의 분쟁에서 토리오가 어떠한 중재도 해주지 않자 오배니언은 참지 않고 제나 형제들의 밀수품을 강도질하고 제나 형제의 세력을 침범했다. 제나 형제들도 오배니언을 죽이려 했지만 재미 시칠리아 향우회인 시칠리아 연합[* Italian-American National Union. 예전엔 Unione Siciliana로 불렸다. 회장 마이크 멀로는 이탈리아계 거물 정치인으로 [[자니 토리오]]와도 친했고 이탈리아계의 분쟁을 막후 조종하는 거물 역할을 했다.]이 히트를 거부해서 일단 참았다. 허나 오배니언의 부하인 존 더피가 [[알 카포네|앨 커폰]]의 클럽에서 의문의 살해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의 범인은 찾지 못했지만 논리적으로 클럽의 주인인 커폰에게 의심의 시선이 쏠렸고 당연히 오배니언은 격분했다. 결국 오배니언은 계략을 꾸며 자니 토리오에게 제나 형제가 자신을 두렵게 한다며 토리오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던 밀주공장의 지분을 토리오에게 판매하고 이 판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였다. 사실 이 공장은 경찰이 습격하기로 내정되어 있던 곳이었고 오배니언은 이를 미리 알고 있었다. 이를 전혀 모르던 자니 토리오는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여 50만 달러를 오배니언에게 주었고 공장에 가자마자 경찰이 습격해 체포되었다. 공장은 몰수당했고 자니 토리오는 경찰에 체포돼서 곤욕을 치렀다. 당연히 오배니언은 껄껄 거리며 토리오에게 한방 먹인 걸 기뻐했고 돈을 돌려달라는 토리오의 요구도 거절했다. 1924년 50만 달러는 2022년 가치로 866만 달러였다고 한다. 완전히 속은 걸 깨달은 자니 토리오는 격분했고 제나 형제들과 프랭키 예일을 시켜 딘 오배니언의 히트를 지시했다. 한편 딘 오배니언은 제나 형제의 두목 앤절로 제나[* Angelo Genna. 이탈리아어식으론 안젤로 젠나.]와의 돈 문제 때문에 그를 전화로 모욕했고 그때 마이크 멀로가 암으로 사망하여 시칠리아 연합도 더 이상 제나 형제를 말릴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때 자니 토리오의 지시까지 있자 제나 형제는 기쁘게 딘 오배니언 히트를 받아들였다. 마이크 멀로 장례식에 쓸 꽃을 주문한다는 핑계로 딘 오배니언의 꽃가게에 방문한 자니 토리오의 총잡이 프랭키 예일, 제나 형제들의 총잡이 존 스컬리스, 앨버트 앤셀미는 딘 오배니언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가 프랭키 예일이 오배니언을 못 움직이게 그의 손을 꽉 잡았다. 그 후 스컬리스와 앤셀미가 총을 난사해 오배니언을 사살했다. [youtube(adKKH-JBKgE)] 미드 [[보드워크 엠파이어]]에서 묘사된 딘 오배니언 암살. 그러나 오배니언은 암살됐지만 이는 거대한 전쟁의 시발점이었다. 두목의 죽음에 격분한 노스 사이드 갱은 오배니언 장례식에서 피의 복수를 맹세하고, 짧은 휴전 기간을 제외하곤 5년간 이탈리아계와의 치열한 항쟁에 돌입하게 된다. 노스 사이드 갱의 후계자인 얼 "하이미" 와이스, 조지 "버그즈" 머란, 빈선트 드루치는 우선 자니 토리오에 대한 피의 복수를 시작한다. 1925년 1월 12일 토리오의 부관 [[알 카포네|앨 커폰]]이 습격 당했지만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아일랜드 갱단의 보복은 대담하고 강력했는데 특히 그 유명한 자동차를 일렬로 행진하게 하고 [[톰슨 기관단총]]을 난사하는 [[드라이브 바이]] 슈팅도 이 당시 아일랜드 갱단이 개발해낸 전술이다. [youtube(g9OmTSM0i9s)] 1932년판 [[스카페이스(1932)|스카페이스]]에 묘사된 드라이브 바이 슈팅. 이 씬은 앨 커폰의 실화에 바탕한 것으로 커폰은 호텔 카페 1층에 있다가 습격을 받고 바닥에 납짝 엎드려 목숨을 건졌다.[* 여담으로 이 영화판의 총기 사운드가 워낙 리얼해서 1932년 당시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고 한다. 이 당시 커폰 옆에서 그를 보호한 남자 경호원이 훗날 시카고 아웃핏의 두목이 되는 토니 어카도(Anthony "Tony" Accardo, 1906 - 1992)이다.] [youtube(2z32zU3_mXw)] 보드워크 엠파이어에서 묘사된 자니 토리오 히트. 커폰 습격 직후 1925년 1월 24일 자니 토리오에 대한 히트 시도가 있었다. 토리오의 집앞에서 토리오와 그의 운전사 라버트 바튼은 여러 발의 총을 맞았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히트맨의 총알이 다 떨어저버렸다. 따라서 토리오는 큰 부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큰 충격을 받고 결국 커폰에게 조직을 물려주고 은퇴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8QTmoln1OZ0|보드워크 엠파이어에서 묘사된 은퇴 씬]] 이후 노스 사이드 갱은 제나 형제들에 대한 피의 복수를 시작했다. 제나 형제들의 두목격인 앤절로 제나가 우선 살해당했고[* 이때도 그야말로 영화 같은 비장미가 넘치는데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추격전 끝에 버그즈 머란, 빈선트 드루치, 하이미 와이스가 이끄는 아일랜드 히트팀이 앤절로 제나를 습격해서 그에게 심한 부상을 입힌다. 앤절로 제나는 필사적으로 피했으나 여러곳에 총격을 받고 가로등에 차를 들이박아 멈추고 말았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진 앤절로 제나에게 경찰이 누가 당신을 쐈냐고 묻자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어깨만 [[오메르타|으쓱 했다]]고 한다. 치료 중에 부상이 심해져서 결국 사망했고 장례식은 성대하게 열렸다. [[알 카포네|앨 커폰]]과 자니 토리오, 조 에스포지토, 시칠리아 연합의 회원들이 모두 조화를 보냈다. ] 그들의 백업을 받아 시칠리아 연합 회장으로 있던 사무조 아마투나도 살해 된다. 이후 마이크 제나가 빈선트 드루치를 암살할려고 하나 실패하고 오히려 주변에 있던 경찰들의 총격을 받고 살해당한다. 이후 앤토니오 제나[* Antonio "Tony" Genna. 이탈리아식으론 안토뇨 젠나.]도 아일랜드 갱단의 습격을 받고 사망했다.[* 친구인 앤토니오 스패노가 만나자고 해서 나왔는데 실은 빈선트 드루치와 버그즈 머란의 계략이었다. 둘이 악수를 하자마자 노스사이드 갱의 히트팀이 나타나 앤토니오 제나에게 총을 쐈다. 앤토니오 제나는 부상을 입었고 치료를 받으면서 스패노가 그를 유인했다고 말할 정도로 오래 버텼으나 이내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장례식은 수수하게 열렸고 갱스터라고 해서 가톨릭 교회는 장례 미사를 거부했다. 그의 죽음이 있은 후 조 아이엘로(Joe Aiello, 1890 - 1930)가 제나 조직을 잇는다. 나중에 앤토니오 스패노는 아이엘로의 형제에게 살해 당한다.] 아일랜드 갱단은 딘 오배니언 암살에 제나 형제들이 관련 된 것으로 확신하고 형제들을 모조리 죽이려 했기 때문에 나머지 삼형제는 공포에 질려 시카고를 떠나 이탈리아로 달아났다. 이후 제나 형제와 친했던 조 아이엘로가 두목에 올라 아일랜드 갱단과 화해하고 조직을 추스렸다.[* 이후 조 아이엘로는 시칠리아 연합을 장악할려는 문제로 커폰과 갈등했고, 커폰을 암살할려고 몇번이나 시도하다 역으로 살해 당하고 제나 조직은 시카고 아웃핏에 흡수 당한다.] 한편 제나 형제들을 정리한 노스 사이드 갱은 자니 토리오를 승계한 [[알 카포네|앨 커폰]]과 본격적인 전쟁을 치렀다. 1925-6년 1년 동안에만 '맥주 전쟁'이라 불리는 전쟁에서 133명이 죽었다. 이렇게 양측은 서로의 밀수품을 강도질하고 밀주공장을 방화하고 주요 인물들을 납치,고문,살해하고 폭탄과 톰슨 기관총을 난사해가며 싸워댔다. 커폰은 처음엔 아일랜드 갱단과 휴전과 평화 회담을 원했으나 오배니언을 죽인 앤셀미와 스컬리스를 넘기라는 하이미 와이스의 요구조건을 들어주기 어려워 회담은 깨졌다. 1926년 10월 11일 아일랜드 갱의 모임 장소로 쓰이던 오배니언의 꽃집 앞에서 걸어가던 하이미 와이스와 동료 4명에게 맞은 편 건물에서 숨어있던 두명의 총잡이가 나타나 톰슨 기관총을 난사해 살해한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노스사이드 갱은 일단 커폰과의 휴전에 동의했다. 버그즈 머란은 더 싸우고 싶었지만 시카고 시장 선거도 걸려 있었고, 빈선트 드루치가 일단 휴전하자는데 동의했기 때문이다. 평화 회담은 10월 21일 열렸다. 이 회담은 굳이 숨기지도 않았는데 기자들도 불렀고 시카고 시경의 형사도 참가해서 증인이 되주었다고 한다. 이 회담에서 더 이상의 분쟁은 덮어두고, 언론 플레이를 해서 서로 음해하지 않으며, 갈등은 대화로 해결하고, 다른 갱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갱멤버가 위의 항목을 어기면 보스가 책임지고 처벌하기로 하였다. 이후 아일랜드 갱단은 빈선트 드루치를 두목으로 세우고 짧은 평화가 있었지만 다시 갈등이 고조되었다. 시카고 시장 선거에서 모든 갱단들이 지지하는 윌리엄 헤일 톰슨[* 부패의 끝을 달리던 시카고의 인물로 금주법을 비난하고 갱들에게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모든 갱단이 물심양면으로 밀어주었다. 시장에 당선된 뒤 나중에 공화당 대통령 후보 선거를 위해 출마하려 하자 앨 커폰을 비롯한 마피아들과 갱단들이 [[정치깡패]]로 나서 그의 라이벌인 찰스 드닌을 지원하는 이탈리아 거물 정치인 조 에스포지토를 암살하고 공화당 전당기간 내내 60발의 [[폭탄 테러]]를 저지르며 그를 지원한다. 그러나 이런 만행은 결국 역효과가 나서 결국 그는 선거에 떨어지고 공화당 후보는 [[허버트 후버]]가 되어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리고 미국은 [[대공황]]의 늪에 빠진다.]이 선거로 나오자 드루치도 그를 지지하기 위해 반대파인 데버의 선거 사무소를 공격했다. 이로인해 그는 경찰의 표적이 됐다. 한편 아일랜드 갱단은 평화회담을 어기지 않으면서 커폰에게 시비거리를 걸길 바랬는데 바로 커폰이 자주 가는 레스토랑의 주인을 납치해 구타하고 살해한 것이다. 커폰은 드루치를 손봐주기로 맹세했다고 한다. 이후 드루치는 선거 개입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고 난폭하게 행동했다는 석연찮은 혐의로 경찰에 사살 당한다. 커폰은 드루치의 장례식에 조화를 보냈지만 아일랜드 갱단은 살해배후가 깨끗하지 않다고 판단, 1928년 9월 7일, 시칠리아 연합의 회장이자 아웃핏의 콘실리에리였던 앤토니오 롬바도[* Antonio Lombardo.]를 살해해버렸다. 이후 노스사이드 갱의 두목은 조지 "버그즈" 머란이 잇는다. 불안불안 하게 이어지던 노스사이드 갱과 사우스사이드 갱의 평화는 결국 깨지게 된다. 뿌리깊은 양측의 갈등은 재현됐고, 서로 알음알음 밀수품과 밀주를 강도,약탈하며 신경을 건드리며 도발을 계속했다. 결국 화가난 두 갱단의 본격적인 전쟁이 다시 시작됐다. [[알 카포네|앨 커폰]]이 머란의 트럭을 불태우자 머란은 커폰의 친구인 노조 지도자 2명을 공격해서 살해해버렸다. 이에 커폰은 그 유명한 [[밸런타인 데이 학살]]을 지시한다. 커폰과 손잡은 디트로이트 퍼플갱이 하이재킹한 밀주를 인수하지 않겠냐고 물었고 그 유인에 걸려든 아일랜드 노스 사이드갱은 밀주를 인수하러 갔다가 경찰로 위장한 커폰 부하들에게 학살 당하고 만 것이다. 이 학살은 전미를 전율케 했고 결국 연방 차원의 대규모 단속이 이뤄젔다. 커폰과 노스 사이드 갱 둘 다 큰 타격을 입었으나 커폰 측이 좀 더 유리했고 전쟁은 종결을 맺었다.[* 1936년에 밸런타이 데이 학살의 주범인 잭 맥건이 살해됐는데 버그즈 머란의 복수라는 설이 있다.] 노스 사이드 갱은 이후로도 존속했지만 결국 금주법이 폐지되고 마땅한 사업을 유지하기 힘들어 점차 해산되었다. [[알 카포네|앨 커폰]]의 시카고 아웃핏은 끝까지 살아남아 지금도 시카고를 주름잡는 강력한 마피아로 남아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